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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줄거리 및 책리뷰
    북토크/기타 2020. 4. 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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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스토리는 사실이라 그런지 몰라도 읽는 내내 내가 다 고통스러웠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결코 반항할 수 없는 분위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매일같이 지내야만 하는 시간, 원하고 갈망하는 그 죽음조차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바로 수용소였다.

     

    프랭클 박사의 직접 겪은 일이므로, 수용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본인이 겪고 변해가는 감정들, 프랭클 박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 존엄성의 이야기로 되어있어 시작부터 엄청난 흥미 상승과 흡입력이 생긴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프랭클 박사의 체험 수기로 이야기이다. 프랭클 박사가 스스로 창안한 로고테라피의 발견으로 이끌어간 실화를 설명하고 있다.

     

    잔인하고 지옥같은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기나긴 죄수 생활로 자신의 벌거벗은 몸뚱이의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 형제, 아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모두 죽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겼다. 인간의 가치와 자유가 1%도 존재하지 않는 강제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핍박 속에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견뎌내고 이겨내는지, 이 안에서도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수용소에 들어온 프랭클 박사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모든 귀중품과 물건을 압수당하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치조차 없는 이 곳에서 좌절을 하게 된다. 그러나 틀에 박힌 수용소 일과에 적응하면서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든 금방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던 모든 것들이 내 옆에서 당장 누가 죽더라도 무감각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바로 정신이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프랭클 박사는 깨닫는다. 

     

    12살의 소년이 실려 들어왔다. 소년의 발가락은 이미 동상에 걸려 있었는데 의사가 집게로 시커멓게 썩은 살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정말로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프랭클 박사가 죽음을 기다리며 매일같이 상상속의 아내와 대화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자 드디어 수용소에서의 자유를 얻게 되는 상황이 온다. 그때 전체적인 긴장 이완과 수용 소안에서 사람들이 내게 해주는 대우의 변화를 통해 정신적인 흥분을 갖게 된다.

     

    여기서 프랭클 박사는 로고 세러피의 실존 분석을 충분한 사례를 들며 이야기하고 있다. 3단계로 나누어 의식적이며 책임을 지는 인간의 두 현상을 실존분석의 기본적현상으로 삼고 있다. 이로써 인간에게 의식적인 면과 무의식적인 책임감이 동시에 있다는 것. 즉, 인간이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여 스스로 의미를 깨우쳐 정신질환을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 로고테라피의 본질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인간 집단의 행동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통해서 얻은 사실 뿐이고, 각 개인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채로 남아 있다.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사실 처음에는 강제수용소에 관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수용소 안에서의 벌어진 일들을 묘사하면서 프랭클 박사가 표현한 인간의 정신적인 심리를 중간중간 설명을 하는데 거기에 더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처음과 다르게 모든 상황에 적응하면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충격적인 일들도 결국엔 무감각에 빠져 그것이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이래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회사든 처음에 입사 후 내가 이곳을 과연 오래 다닐 수 있을까?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지면 어느새 1년이 2년 되고 5년이 넘고 10년 되는 것 아니겠는가. 

     

    He who has a 'why' to live for can bear with almost any 'how'.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137p

     

    이 한 줄이 내 심장을 울렸다. 회사의 권태로움, 삶의 권태로움, 게으름, 의욕상실, 피곤함의 연속, 시작 전부터 실패를 걱정하는 정신력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왜 살아야 하는가. 그게 문제였다.

     

    수용소와 같이 인간의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프랭클 박사의 말들이 그동안 우리는 너무 아주 작은 것에도 힘들다고 불평불만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그 어떤 자기 계발서 적보다 프랭클 박사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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